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루스 2세 (문단 편집) === [[리디아]] 정복과 [[델포이 신탁]]의 전설 === 키루스의 활약이 본격화된 건 리디아 정복전이다. 메디아의 이웃 나라이자 우호국이던 [[리디아]]의 국왕 [[크로이소스]]에게 키루스의 [[쿠데타]]는 좋은 침공 구실이었다.[* 아스티아게스는 리디아의 왕녀와 혼인했다고 한다.]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 헤로도토스는 저서 히스토리아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를 공격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여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받았다. 여제관 피티아가 답신을 주었다.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를 치면) '''강력한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강력한 제국'이라면 누가 봐도 페르시아가 아니겠는가? [[크로이소스]]는 바로 전쟁을 선포했고,[* [[스파르타]]도 이때 지원했다고 한다.] [[낙타]] 부대를 동원한 키루스의 우회 기동 전술[* 이를 제안한 사람이 위에 나온 하르파고스라고 한다.]에 보기 좋게 패배한다. [[자승자박|리디아도 페르시아 못지않은 강국이었음]]을 그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강대국에 전쟁을 선포하려면 선포하는 쪽도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또한, 패배한 나라가 무조건 망한다고 한다면 그 나라는 신탁을 모르는 국가가 아니라 아는 나라라고 해석하는 게 더 맞는 게 신탁을 아는 국가는 이상한 변덕이 생겨서 상대를 망하지 않게 내버려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다행히 [[크로이소스]] 본인은 키루스의 아량으로 목숨을 건지고 왕의 조언자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는 키루스가 [[크로이소스]]로 추정되는 왕을 즉각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이 기록에서 나오는 페르시아에 패배한 나라가 리디아인지 [[우라르투]]를 비롯한 다른 나라인지 논란이 있다.][* 반대로 조언자로 목숨을 건졌다는 내용에서는 키루스 2세가 [[크로이소스]]를 현명하다고 여겨 조언자로 삼았고 꽤 아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1권에서도 소개되며 [[김광수]]의 《논리와 비판적 사고》에서도 주어의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언급되는, [[델포이 신탁]]의 모호함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Delphic'이라는 단어의 뜻은 '애매모호'가 되었으며, [[델파이 기법]] 역시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양군은 캅파도키아의 프테리아에서 처음 맞붙었는데, 치열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크로이소스]]는 자신의 군대가 숫적으로 불리해 승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사르데스로 퇴각을 결정했다. 그리고 리디아의 동맹인 이집트와 스파르타, 신바빌로니아의 지원을 받아 4개월 뒤에 다시 페르시아를 공격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키루스는 리디아군이 물러난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사르데스로 군대를 진격시켰고,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 역시 프테리아에서 유의미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에 키루스가 자신을 쫓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적이 코앞까지 진격해오자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페르시아와 리디아의 전투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키루스는 군대를 모으고, 고지대에서 [[크로이소스]]의 군대를 맞이한다. 리디아와 페르시아 군대는 [[기병]]이었다. 그들은 병거 앞에 도열해 있었다. [[크로이소스]]는 밀집 대형으로 유명한 [[이집트군]]을 거느리고 있었고, 키루스도 비밀 병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사령관을 맡은 [[하르파고스]]는 키루스에게 조언하기를 "리디아의 말들은 [[낙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낙타 향기는 적들의 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키루스의 허락하에 새로운 [[낙타#s-4.3|낙타 군대]]가 조직되었다. 새로운 낙타 군대가 뛰어 나오고, 리디아 보병과 기병이 혼란에 빠진 사이, 키루스의 궁병은 진지와 방어 탑에서 쉴새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페르시아 사령관의 예측대로 리디아 군대는 큰 혼란에 빠져갔다. 어떤 기병은 놀라서 떨어지기도 하고, 말을 버리고 도망가기도 하였다. 키루스의 승리였다. 패배한 [[크로이소스]]는 사르데스에서 농성을 하면서 각지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생각이었으나 도시는 고작 14일 만에 함락당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는 그 후일담도 기록하고 있는데, 나중에 크로이소스가 델포이 신전에 "당신들이 섬기는 신인 아폴론이 내게 거짓말을 했다!"고 항의하자, 델포이 신전 측에서는 "정해진 운명은 신조차 피할 수 없다. 당신의 조상은 원래 왕이 아닌 비천한 이발사였는데 그 4대째 후손인 당신까지 리디아의 왕위를 차지했고, 또 비록 페르시아한테 패배했지만 목숨은 건지지 않았는가? 이 정도면 아폴론 신도 당신한테 해줄 만큼 해주었으니 너무 원망하지 마라."라고 다소 궁색한 변명을 했다고 한다(...)]. 페르시아는 [[지중해]] 전역의 신흥 권력으로 떠올랐고, 그 공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주변 국가들은 벌벌 떨면서 이 무적의 정복자의 위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BCE 540년까지, 키루스는 [[킬리키아]]와 [[엘람]]의 수도 [[수사]]를 정복했다. 그러나 아직도 서아시아에는 큰 힘이 남아 있었으니 바로 [[신바빌로니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